부산의 지정文化(문화)재 및 文化(문화)유산 답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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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일 21-09-26 09:50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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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에 1683년에 이에 1683년에 조선통신사 日本(일본)에 갔던 윤지완이 돌아올 때 쓰시마섬에서 섬주와 함께 전문 5개조에 달하는 약조를 체결하였는데, 같은 해 8월에 양측은 약조를 각각 한문과 日本(일본)어로 명文化하고 비석에 새겨서 조선 측은 수문 안에 세우고 日本(일본) 측에서는 왜관의 경계선에 세워서 널리 알리게 하였다. 그러나 두모포에서 초량(용두산 일대)으로 왜관을 옮긴 후 왜관의 규모가 커지고 면적도 넓어져 왜인들의 범법행위가 심해졌다.부산의문화재및문화유산답사 , 부산의 지정문화재 및 문화유산 답사인문사회레포트 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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레포트/인문사회
1. 약조제찰비(約條製札碑)
약조제찰비는 1972년 6월 26일 시도기념물 제 17호로 지정되었다. 이것은 조선 숙종9년(1983년)동래부사 윤지완과 쓰시마섬주가 왜관 운영을 위한 금제조항 다섯가지를 제정하고,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.부산의 지정文化(문화)재 및 文化(문화)유산 답사에 대한 글입니다.
1607년(선조 40) 수정도 부근의 두모포에 왜관이 설치되고 양국간에 국교가 정상화되자 왜관에는 쓰시마 관인과 상주 왜인이 거주하게 되고 日本(일본) 상인들의 출입도 빈번해지면서 두 나라 상인의 접촉도 많아 졌다. 이때 조선 측에서 세운 비가 지금 남아 있는 비석이다. 이에 따라 밀무역, 잡상행위 등 여러 가지 폐단이 일어났고, 政府(정부)에서는 폐단을 바로잡기 위하여 여러 次例(차례)의 약조를 맺어 위반자를 단속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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비문의 내용은 ‘출입을 금한 경계 밖으로 넘어나온 자는 크고 작은 일을 논할 것 없이 사…(drop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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